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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배출권이 이제 주식처럼 증권사를 통해 사고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제도 변경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의 탄소정책과 금융시장의 지형을 동시에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그동안 배출권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는 제한적이었고, 거래 방식 역시 다소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탁거래 시스템의 도입은 배출권 거래를 ‘시장화’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4일부터 위탁거래 시범운영을 시작한다며 배출권 시장의 문턱을 낮추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존에는 한국거래소에서 배출권을 직접 거래하는 방식만 가능해 기업 담당자들이 거래 참가 절차를 복잡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고 주식 거래 시스템처럼 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사실상 가장 큰 변화는 참여자의 확대입니다. 기존에는 할당대상업체와 시장조성자 정도가 중심이었지만, 법 개정 이후 금융기관과 연기금까지도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배출권이 ‘환경 규제 영역’을 넘어 ‘금융 자산’으로 본격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시장 참여층이 넓어지면 유동성이 증가하고, 거래량이 커질수록 가격 신호의 신뢰도도 높아질 것입니다.
이번 시범운영을 위해 엔에이치투자증권이 배출권거래중개업자로 선정되었고,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와 한국거래소가 관련된 시스템을 구축해 안정적인 거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배출권등록부 시스템이 위탁거래 정보를 통합해 관리하게 되면서 거래 흐름이 단순·명확해지고, 기업은 더욱 효율적으로 배출권을 조정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가장 큰 장점은 ‘편의성’입니다. 배출권을 직접 거래소에서 사고팔 필요 없이 증권사 계좌만 있으면 되니 거래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개선됩니다. 특히 할당대상업체들은 배출권등록부에서 ‘직접 거래’에서 ‘위탁 거래’로 전환 신청만 하면 위탁거래 참여가 가능해집니다. 배출권 거래는 여전히 기업의 비용 구조와 직결되는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에, 거래 편의성의 개선은 기업 운영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입니다.
제도 변화가 실제 시장에 가져올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금융상품화’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입니다. 배출권 선물시장 도입과 다양한 금융상품 출시의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기후부의 설명은, 배출권 시장이 단순한 규제 수단이 아닌 투자 자산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배출권 가격 변동성을 활용한 투자 상품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국내 환경·금융 정책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논의를 불러올 것입니다.
물론 개인 투자자의 참여 여부는 아직 검토 중이지만, 시장이 점차 성숙한다면 관련 논의는 더 속도를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환경 정책이 점점 시장 기반으로 움직이는 만큼, 배출권의 금융자산화는 앞으로도 여러 형태의 진화를 거칠 것입니다.
오일영 기후부 기후에너지정책관은 “위탁거래 시행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단순히 기업의 편의를 위한 개선이 아니라, 감축 목표를 비용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는 얘기입니다. 배출권 거래시장이 활성화되면 감축 비용과 기회 비용에 대한 시장 신호가 더욱 정교해지고, 이는 국가 전체의 감축 계획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과제는 이제 모든 산업이 함께 풀어야 할 현실입니다. 배출권 거래의 접근성이 높아지는 것은 기업에게 책임을 강요하는 변화가 아니라, 거래와 감축을 보다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변화입니다. 앞으로 배출권 시장이 금융시장과 본격적으로 결합될수록, 환경정책은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산업 혁신의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